아무리 잘못한게 많다고 지적을 받아도 절대 깔 수없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업적.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의질을 뒤바꿔버린.. 세계에서도 부러워하는 제도다.
대중교통 환승제.
환승으로 많은 절약이 됐을뿐더러 대중교통을 활성화시켜 경제에도 이바지함.
2008년 3월 26일 일산의 어느 아파트에 갑자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
이례적으로 8시인지 9시 인지 암튼 저녁 뉴스시간에 생생하게 전국에 방송되고……
전국민이 분노한 가운데…
일산 경찰은 초기 그냥 대수롭지 안케 그냥 넘어갈려고 하는 와중에
방송을 보게된 이명박 대통령이 일산경찰서에 강림예고
순간 일산경찰서는 분주함을 넘어 패닉상태로 빠지고….
여기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경찰서장…. 일산에 부임한지 하루만에 이일이 발생했으니 죽을맛
2008 년 3월 25 일 부임
2008년 3월 31일 이명박 대통령 강림
부임 5일만에 대통령 앞에서 일산의 치안상태 브리핑
이당시 오갔던 말들
“일선에서 경찰들이 소홀히 한다. 일선 경찰은 아직도 생명의 귀중함을 소홀히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31일 오후 2시35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를 방문해 이기태 일산서장을 질타했다.
일산 어린이 유괴 미수 사건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이 직접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를 방문한 것이다. 굳은 표정으로 현장에 나타난 이명박 대통령은 일선 경찰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찰이 유괴 사건에 철저히 하자고 하는 그날 이런 일이 있었다. 일선 경찰이 너무 해이해져 있다. 사건만 생기면 피해를 입고, 사후 약방문으로 처리한다. 우리 일선 경찰들이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일해야 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일선 경찰이 너무 해이”
이명박 대통령의 이러한 지적에 이기태 서장은 “잘못했습니다”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현직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사건 담당 경찰서를 방문한 것만으로도 현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산경찰서는 물론 경기도지방경찰청, 경찰청에 이르기까지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기태 서장은 “CCTV 촬영된 용의자를 목격자와 탐문을 통해 현재 형사를 총동원해 탐문을 하고 있고 납치 성추행 수법자를 조회해 서면조사를 하고 있다. 범행현장 도주로에 있는 CCTV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고, 관내 유사 사건을 분석하고 이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저희 경찰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산경찰서 방문은 15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기태 서장에게 부임한 지 얼마 됐느냐고 물었고 서장은 “5일 됐다”고 답변했다. 이기태 서장은 부임한 지 일주일도 안돼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당시 서장을 비롯해 일산경찰서에 난리가 남과 동시에 이명박 대통령의 카리스마
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상당히 열받은 모습
당시 경찰들은 미친듯이 범인을 잡으려고 했고..
그날 밤 범인검거
그 이후 청와대 게시판과 언론들
요약
1.납치범의 CCTV 영상이 방송으로 송출됨
2.경찰서에서 해당 사건을 크게 보지 않고 놔둠
3.소식 전해들은 이명박 대통령 극대노함.
4.일산경찰서에 오후 3시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
5.경찰서 뒤집어놈
6. 6시간만인 오후 9시에 범인 검거
자신의 임기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에 대해 희생자들을 죽을 때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매년 천안함 추모일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 방문기록을 남기고 있다.당장 사실상 부상당한 군인들에 대해서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목함 지뢰사건 당시 같은 말을 했던 박근혜나, 6.25 참전자와 연평해전,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김정은 사진이 든 사진첩을 나누어준 문재인 대통령과는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현재 재조명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아덴만 여명 작전
때는 2011년 1월 15일, 소말리아의 해적에게 피랍된 1만톤급 화물선 삼호 주얼리(SAMHO JEWELRY)호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대한민국 주도 아래진행된 대한민국, 미국, 오만, 파키스탄 해군의 연합작전.
일명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라고도 불린다.
납치 6일만인 2011년 1월 21일 청해부대 소속 UDT/SEAL 팀의 급습으로 해적 8명 사살, 5명 생포와 동시에 인질 21명 전원 구출의 성과를 낸 우리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구출 작전이다.한국 선원 8명을 비롯해 미얀마인 11명, 인도네시아 2명 총 21명의 선원 모두를 구출하였다.
2011년 1월, 삼호 주얼리 호가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당했다. 선원들은 해적의 접근을 보고 재빨리 선미의 로프 저장창고로 대피했으나 3시간 15분 만에 뚫렸고 해적들은 배를 소말리아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더 이상의 납치를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명박 대통령은 청해부대(당시 지휘관 해군 항해대령 조영주)에게 해적 소탕과 인질 구출을 명령했다.
요약
1.2011년 1월, 우니라나 1만톤급 삼호 주얼리호가 아프리카의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
2. 구출 1차 작전 게시) 주변에서 훈련 중이던 최영함이 즉시 구출을 위해 삼호주얼리호로 출발, 이틀 뒤 주얼리호의 30km까지 접근.
(1차 작전은 대통령의 승인 없이 소말리아 해적 4명이 보트를 타고 인근의 몽골 선박을 피납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과정에 링스헬기로 저격을 하면서 시작됨)
3.이후 해적들이 모선과 합류하리라는 첩보를 받고 합참의장이 국방부장관(김관진)에게 승인을 받고 당시 대통령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서 여명작전을 실행.
4.해군 UDT/SEAL 삼호 주얼리호 진입 등반
5.공격팀 선교 완전 장악
6.첫 인질 구출하게 되고 인질 21명 전원 구조 ‘아덴만 여명 작전’ 종료
(그 결과 해적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8명의 해적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했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사망자는 없었다. 다만 선장이 복부에 관통상을 입음)
7.
관통상을 입은 석선장은 읍급 처치 후 오만의 술탄카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11시간 만에 서울공항에 도착하고 아주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이국종 교수’에게 치료를 받았다.
(이때 야당은 해군 대원들의 총에 석선장이 맞은거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며 지적했지만 석선장이 무사히 깨어나면서 아니라는 것이 밝혀짐. .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또 정치질 ㅋㅋ)
가장 성공적인 대테러 작전 이후…
석 선장은 완쾌하고 이명박 대통령께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고, 해군 충무공 훈련원에서 3급 군무원으로 일함.
1월 21일 대한민국 해군 최영함이 주도한 아덴만 여명작전은 새벽 4시 58분에 시작해서 약 5시간만인 오후 2시 56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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